타임뉴스칼럼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페미니즘 소설<82년생 김지영>
김수종 기자 vava-voom@hanmail.net
기사입력 : 2018-01-04 09:36:04

[대구타임뉴스=김수종]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판매 부수 50만 부를 돌파했다. 이 책은 30대 중반으로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전업주부 여성인 주인공 김지영을 통해 결혼, 취업, 경력단절, 독박 육아 등 젊은 현대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지영을 통하여 페미니즘 문제를 한국사회 전반에 확산시킨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정확한 자료에 근거한 객관적 묘사가 보고서 형식의 문체와 만나 책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페미니즘 열풍은 여성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 책은 작년 '오늘의 작가상'을 비롯하여 '양성평등문화상'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선정 올해의 책' '환경재단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들' '2017 소비자브랜드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사회전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김지영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하고 흔한 여성이다. 작가는 어디에서나 발견 가능한 30대 여성을 통해 한국여성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할머니가 막내인 남동생을 아끼는 환경에서 자라나,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당연히 남자는 1번이 되는 학급 번호를 거친다.

남자부터 시작하는 학급 번호, 자연스럽게 남자부터 급식을 먹는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괴롭힘에 고통 받는다. 그 후 고교시절엔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 남학생의 스토킹으로 남자 공포증을 겪기도 한다.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면접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후 어렵게 작은 광고홍보대행사에 입사한다. 남성을 중심회사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지만, 아이를 가진 후 바로 퇴사한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맘충소리까지 들은 그녀는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그녀 주변의 여성들로 빙의하는 증상을 겪는다.

이 책은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시대의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 보여 준다.

여권이 신장된 시대, 그러나 여전히 여성이라는 조건이 굴레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인생을 다룬 조용한 고백과 뜨거운 고발로 완성된 새로운 페미니즘 소설이다. 아울러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자료로 이루어진 목소리 소설이다.

연일 새롭게 등장하는 페미니즘 화두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저마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를 뜻하는 (Mom)’과 벌레를 뜻하는 ()’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맘충이란 호칭은 육아하는 엄마 대부분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며 많은 여성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상처를 안겼다. 뿐만 아니라 이 표현은 육아가 마치 여성만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게 함으로써 성차별적 시선을 고착화하는 데도 일조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충격을 받아서 집필을 시작한 소설이다. 소설을 쓸 당시 작가는 유치원 다니는 자녀를 둔 전업주부였다. 온라인상에서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만 놓고 엄마들을 비하하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서 얼마나 더 진보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어린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발화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녀가 선택한 이야기들이 바로 일생에 거쳐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 왔던 부당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상담은 자기 고백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의 백미도 김지영 씨의 자기 고백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세밀한 심리 묘사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분히 쏟아 내는 그녀의 말들은 김지영을 이 시대 여성의 대변자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세하고 보편적이다.

면접시간을 맞추기 위해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보고서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매우 사실적이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 경험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들을 채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등장하는 각종 사실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성차별 역사를 한눈에 보여 준다. 구체적인 자료출처까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개인적 기억과 고백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적 자료들을 통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으로 도약하는 근거가 된다.

, 너 힘들었니? “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예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대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진다.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나이가 들수록 저임금에 단순노동으로 여성지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책은 현재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30대 중반 대졸 경력단절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여성의 차별문제와 노동문제를 정확한 근거와 사실에 기초하여 작성한 보고서다. 소설은 척박한 천민자본주의 조선 땅에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관한 문제를 다시 사회적으로 생각하게 해준 수작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저자 조남주는 1978년 생으로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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